
안녕하세요. 복지 전문가가 세상의 다양한 시선으로 복지를 이야기하는 블로그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꽤 오래전에 출간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복지’와 ‘성장’의 시스템들이 어쩌면 우리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문가가 많아질수록, 나는 왜 무력해지는가?
일리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인 ‘전문가 중심 시스템’에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만든 의료 시스템이 오히려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고, 교육 시스템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지적하죠. 이처럼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제도와 기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우리 삶의 자율성을 갉아먹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상품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집을 지을 힘도 없게 되는 무기력이다. 땀을 흘려야 기쁨을 얻는 인간의 조건이 소수 부자만 누리는 사치스러운 특권이 된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도 이런 딜레마를 자주 마주칩니다. 도움을 주려고 만든 서비스가 때로는 수혜자를 시스템에 갇히게 만들고, 스스로 일어설 힘을 약화시키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죠. 전문가들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제공하는 방식이, 결국 시민 개개인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자조 능력)을 빼앗아가는 ‘현대화된 가난’을 낳고 있다는 일리치의 통찰은 정말 섬뜩합니다.
일하지 않아도 ‘쓸모 있는 실업’의 가치
일리치가 제시하는 가장 흥미로운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쓸모 있는 실업’입니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월급을 받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자신과 공동체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닌, 이웃을 돌보거나, 집을 수리하거나,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죠.
이러한 자율적인 활동은 시장의 계산법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힘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오직 고용과 GNP에 기여하는 ‘노동’만을 가치 있게 여기면서, 이러한 비공식 부문의 중요한 활동들을 무시하고 위협한다고 그는 비판합니다.
우리나라는 복지 제도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노인 빈곤율이나 복지 수혜자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들은 남아있습니다. 일리치의 시각으로 볼 때, 복지 제도의 성장은 시민들이 ‘쓸모 있는 실업’ 상태에서 더욱 자율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 복지, ‘해주는 복지’에서 ‘함께 하는 복지’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한국 복지 시스템은 이제 단순히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는’ 양적 성장을 넘어, 개인의 자율성을 회복시켜주는 질적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전문가의 역할 재정립: 복지 전문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권위자’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원을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로 바뀌어야 합니다.
- 지역 사회의 힘 키우기: 이웃 간의 돌봄, 품앗이 같은 비공식적인 상호 부조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복지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지 제도가 우리를 ‘의존하게 만드는 덫’이 아니라,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게 해주는 발판’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복지 시스템의 근본적인 방향을 다시 설정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책입니다. 복지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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